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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승부걸 때라 판단

[안터뷰] 김준현 의원, 도의원 불출마 ... 더 큰 꿈 꾼다

강주완 | 기사입력 2018/02/19 [17:02]

지금이 승부걸 때라 판단

[안터뷰] 김준현 의원, 도의원 불출마 ... 더 큰 꿈 꾼다
강주완 | 입력 : 2018/02/19 [17:02]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 ... 당원 선택 겸허히 기다릴 터
을지역 도의원 2석, 시의원 3석 확보 위해 최선 다한다

 

잘 나가는 경기도의회 의원인 김준현 도의원이 인생 세 번째 도전을 해 화제에 오르고 있다.

 

김준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월등히 높고 지역구도 한강신도시 지역이라 재선이 무난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과감히 도의원 불출마를 선언했다.

 

- 도의원 불출마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결단을 내린 배경은?

"앞으로 제가 어떤 정치적 행보를 거쳐 어떤 정치인으로 가야 하나 평소 고민 많이 했다. 을지역 정하영 위원장이 김포시장 출마를 위해 위원장 직을 사퇴하자 지금이 정치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정치인이 결단을 미루고 현실에 안주하면 공무원과 다름없다. 지금이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도의원으로서 일 해오면서 한계도 많이 느꼈다. 도의 사무 중 70% 이상이 중앙정부에서 위임한 것이기에 중앙정부에서 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도 조례를 제정해야 선언적 의미 외에는 없었다. 더욱이 제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도 지역의 살림을 책임지는 단체장보다는 제도를 만드는 국회의원이다."

 

-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경기도의회에서 경제과학기술위원회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해 오면서 천착한 것이 경제, 그 중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다. 경제에서 공정한 운동장을 만드는 것을 제 의정활동의 목표로 삼아 왔다. 단순히 김포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경기도의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자리 창출, 양극화 등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데 힘 쓰는 것이 제 노선과 이념에 맞다고 생각했다."

 

김준현 의원은 정하영 위원장의 사퇴로 위원장이 공석이 된 김포을지역위원회에서 운영위원장으로서 위원장 직무대행역을 맡게 됐다. 하지만 자신의 꿈인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에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우선 지역위원회 위원장이 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해진 것은 올 7월경 지역위원장을 선출한다는 것뿐이다. 그 전에는 지역 운영위원장으로서 운영위원들과 함께 지역위원회를 끌어가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김포시의 경우 도의원은 현재 3석에서 4석으로, 시의원은 총 10석에서 13석으로 늘어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도의원은 현재 제1선거구(고촌·사우·풍무), 제2선거구(김포본동·장기본동·장기동·구래동·운양동), 제3선거구(통진·양촌·대곶·월곶·하성) 등 3개 선거구로 구획돼 있다. 여기서 제2선거구가 김포본동·장기동, 장기본동·구래동·운양동 2개로 분구될 예정.

 

시의원의 경우 현재는 가,나,다,라 4개 선거구에서 가선거구만 3명을 나머지 3개 선거구에서 각 2명씩 9명과 비례대표 1명을 포함 10명이 있다. 이것을 라선거구를 제외한 가,나,다 선거구 모두 3명씩, 비례는 2명으로 늘어나 총 13명이 될 예정이다.

 

"저는 을지역운영위원장으로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을지역의 경우 도의원 2석 모두를, 시의원의 경우는 다선거구에서 1석, 라선거구에서 1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서 지역위원장 공모에서 당원들의 선택을 받겠다."

 

■ 내 인생은 결단의 연속

 

도의원 불출마를 결단한 김준현 의원은 인생 고비고비마다 결단을 서슴치 않았고, 결단을 내린 후에는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첫 번째 결단은 평범한 직장인에서 도의원 출마를 결심한 것.

 

경북 영덕에서 출생한 김 의원은 세 살 무렵 온 가족이 서울로 이주했다. 서울 오산중고등학교와 한신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이 김포공항 근처로 이전하면서 직장따라 옮긴 곳이 김포. 김포에 터전을 잡은 김 의원은 지난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과감히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2010년 민선5기 도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2010년 도의원에 국민참여당으로 출마한 김 의원은 이중당적으로 후보자격을 상실당해 첫 번째 결단은 수포로 돌아갔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열린우리당에 페이퍼 당원으로 가입한 것이 발목을 잡은 것. 당원 가입 후 정리된 줄 알았는데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

 

"학교다닐 때 학생회장으로서 학생운동에 매진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살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이런 암담한 현실을 자식에게 물려줄 순 없다고 생각,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왜 도의원인가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포시는 접경지역으로 가치가 높은 곳이다. 남북 화해무드가 지속될 때 김포는 최적의 곳이다. 새로운 김포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경기도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 의원은 한번의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2014년 도의원에 다시 출마, 곳곳 바닥을 누비며 몸으로 때운 선거운동끝에 도의회에 입성했다. 도의원 한 번 더한 후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는 가족들의 설득도 많았지만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집사람과 아들 둘 모두 처음에는 만류했지만 내 뜻에 기꺼이 따라줘 고마울 뿐"이라는 김준현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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