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터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예전에 육지와 도로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뱃사공은 강촌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었고 나그네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설레임으로 가득찬 장소가 되었다. 특히 농경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는 곡물이 국가 재정을 대부분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수송하는 방법으로 국가에서 적극 장려를 하여 나루터 부근에는 사공과 가족들이 거주하는 가옥과 여객, 화물을 보관시키는 창고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지명을 통하여 옛 나루터를 짐작하게 하는 곳이 많이 있는데 특히 서울 마포 나루는 대표적이다. 김포 역시 대명포구를 비롯하여 조강나루터, 전류포구, 감암포, 섯골나루터 등이 있어 당시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루터 부근은 보부상등 많은 왕래가 있어 길손들을 유숙시키는 주막이 성행 하였고 큰 주막은 기생을 두고 영업을 하여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다. 나루터 부근의 주막은 막걸리, 탁주, 청주와 함께 주모의 헤픈 웃음으로 손님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등 호객행위가 있었으나 나그네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때 주모와 눈이 맞을 경우 진한 농과 함께 달콤한 사랑으로 만리장성을 쌓으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각 지방 소식과 문물을 전달하는 기능과 길손들의 향수를 달래 주는 사랑방이 되어 암행어사는 지방의 동정을 살피며 사또의 비행을 찾는 소중한 정보처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풍류,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판 이런 주막의 일화가 있다. 조선 초 청빈하기로 유명한 정승 맹사성이 서울로 상경하다가 하루밤을 지내게 되는데 시골 양반이 허술한 맹사성을 보고 수작을 걸어 왔다. 그는『공』자와『당』자를 말끝에 붙여 문답을 하여 막히는 쪽에서 술 한턱 내기를 하였다. 맹사성이 먼저 『무슨 일로 한양에 가는 공』하자 『과거보러 가는 당』하였다.『그럼 내가 주선 해줄 공』하니 『웃기는 소리하지 말랑당』하였다. 며칠 뒤 과거장에서 그를 본 맹사성은 『과거 시험 문제 어떤공』하였더니 창백해지면서『이제는 죽어지어당』하였다는 주막집 일화 그리고 『여자 뱃 사공의 배를 탄 짖궂은 손님이 내가 당신 배를 탓으니 당신 남편이구려』하자 『여자 사공은 네가 내 배속에서 나와 있으니 내 새끼이구려』라고 응수했다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말도 전해오고 있다. 이렇게 풍류와 해학이 넘치는 나루터는 현대화된 대형 토목 기술과 해상 교통의 발달로 기능이 거의 소멸되었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지금은 군 요충지로 많은 통제를 받고 있다. 그리고 나루터는 소문의 발생지이고 이별, 떠남, 만남이 이루워지는 장소로 여러 가지 문학적 요소가 있는 것이 바로 나루터이다. <저작권자 ⓒ 더김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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