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UNESCO)란 유엔교육과학기술기구입니다. UN기구이지만 불란서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기구중 가장 큰 기구입니다. 유네스코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가 엊그제 우리나라의 남한산성을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해도 좋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참으로 좋은 판정이었고, 정말 기분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한산성에 관한 사연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그리 편치 않습니다.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사건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너온 청나라 군사들은 불과 닷새만에 한양 근처에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烽火)나 장계(狀啓) 같은 긴급 연락조직이 있었지만 관료들의 무능으로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국왕인 인조(仁祖)와 조정의 모든 신하들은 서로 살려고 허둥지둥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묘안이 없었습니다. 대책회의 주요 내용은 언제, 어디로, 어떻게 도망칠 것인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드디어 12월 15일 인조는 울부짖는 백성을 그대로 놔둔채 조정을 남한산성으로 옮겼습니다. 왕실과 고위 관료의 가족들은 강화도로 피난을 보냈습니다. 강화도로 피난을 책임진자는 그 와중에도 귀한 말을 동원해 50여개나 되는 재물궤짝을 따로 실어 날랐습니다. 바다를 건널때에는 가장 튼튼하고 좋은 배에 자기의 식솔들을 먼저 태웠다니 그 자도 오늘날의 세월호 선장과 똑같은 자였나 봅니다. 14만명이나 되는 청나라의 대군과 맞선 조선군인은 불과 15,000명이었다니 패망은 불을 보듯 훤하였습니다. 우리 병사들은 빈 가마니를 방한복으로 삼아 몸에 두르고, 병사들의 발은 동상으로 퉁퉁부은채 맨발에 집신을 신고 청나라군대와 맞서 싸웠다니 이러고도 일국을 지키는 정예부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청나라 군인들이 밖에서 성문을 열라고 소리소리 지를 때 안에서는 대신들끼리 항복할것인가, 저항할것인가를 놓고 연일 말싸움만 하다가 결국 46일만에 인조는 성밖으로 나와 청나라 장수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돌에 짓찌면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채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몇시간 후 왕과 신하들이 한양으로 돌아올때도 또 서로 먼저 타려고 치고받고 싸웠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역사입니까. 최근의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삼백년전의 우리조상들과 오늘의 우리들이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가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비웃고 있습니다. 선진국민답게, 어른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더김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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