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김포

조한승의 망원경

알고있는가  관동 대 학살을....

더김포 | 기사입력 2013/09/09 [12:29]

조한승의 망원경

알고있는가  관동 대 학살을....
더김포 | 입력 : 2013/09/09 [12:29]

 2013년은 일본 관동 대 지진이 일어난지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 58분 규모 7.9의 대 지진이 도쿄등 일본 관동지방을 강타, 순식간에 10만 50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이때 일본 정부는 사태수습에 나섰으나 혼란이 심해지자 국민의 불만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한다는 헛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러자 일본 군대와 경찰과 민간인들로 구성된 자경단(自警團)은 지진 다음날인 2일부터 4일까지 도쿄, 요코하마, 지바, 가나가와등 관동지방 일대에 거주하던 수천명의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이것이 “관동 대 학살”입니다. 일본 시민단체 “관동대지진때 학살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해 추도하는 모임”은 목격자와 공립도서관에 보관된 당시 일기, 자서전, 향도자료집등을 뒤져 1990년대 후반부터 증언집을 발간해 왔는데 이번에는 300여건의 증언이 추가 되었답니다.

여기서 자료집의 한 대목을 옮겨 봅니다. “9월3일 낮이었다. 다리 아래에 조선인 몇 명을 끌어와서 자경단 사람들이 조선인들을 죽였다. 너무 잔인했다. 일본도로 목을 베고, 배를 찌르거나 해서 죽였다. 임신해서 배가 크게 부른 여자도 찔러 죽였다. 내가 본 것으로는 약 30여명이 이렇게 죽었다.”

“10명씩 조선인을 묶어 세워 군대가 기관총으로 쏴 죽였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은 선로위에 늘어놓고 석유를 부어 태워 죽였다.” 학살의 참상 뿐 아니라 일본 관헌이 관동대학살에 관여한 사실도 자료집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최근 일본의 우익세력이 교과서에서 군대와 경찰이 학살에 관여했다는 내용을 삭제하려는 것이 명백한 사실 왜곡이자 은폐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본 관헌이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의 여파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조선인의 복수가 어젠가 있을 것이라는 잠재된 우려심리를 이용, “조선인 폭동”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했고, 순식간에 집단 광기로 치달았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의 조직적 진상은폐로 당시 몇 명의 조선인이 학살되었는지 정확히 알길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학자들의 조사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약 2~3만명이 학살되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대학살 90주년을 맞으면서 요즘 일본 우익들의 광기가 앞으로 더 크고 무자비한 사태로 번지지 않을가 걱정이 큽니다.

일본은 영원한 적이며 영원한 우방 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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