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졸업과 입학의 시기입니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모두가 걱정입니다.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에 잘 적응하는 소위 범생을 둔 부모님께서도 “혹시 이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고, 속을 썩이는 자녀를 둔 부모님께서는 “이녀석이 언제나 사람이 될까”하고 걱정이 끓이질 않습니다. 교육의 주체는 어른이고, 삶의 주체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삶의 운전대는 학생들이 아닌 교사와 학부모가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창의적이고, 글로벌하게 살라고 말하니 이게 통합니까 출세한 부모일수록 아이가 정도에서 벗어나면 큰일 난 것처럼 난리를 칩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에게 “이것해라” “저것하지마라”는 식으로 통제와 규율을 가합니다. 사실 이런 부모들의 자녀들은 외부적 통제가 두려워 사람들 앞에서는 잘하는척 하지만 누가 보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기들 멋대로 행동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마마보이처럼 키우면 그 마마보이는 결국 나중에 자동차는 물론 아파트까지 사달라고 떼를 쓸 것입니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쪼들리든 어떻든 상관 안할 겁니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어른들과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교육이란 “미성숙 상태에서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활동과 노력”입니다. 그런데 많은 어른들은 조바심을 내고, 아이들을 다그치며 극성을 부립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아이들이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곧 봄이 옵니다. 겨우내 눈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보리를 보십시오. 세상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밤새도록 게임방에서 살다 돌아온 아이에게 부모와 교사가 악을 쓰고 때리며 꾸짖기 보다는 “그동안 재미있었니?”라고 물으면 “교실보다는 재미 있었어요 그런데 좀 허전하네요”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때에 어른은 “그래, 순간의 재미를 쫓다보면 그렇게 허전한 법이란다.”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께서는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위대한 것입니다. 언땅에서 보리가 나오고, 높은 바위에서도 나무가 자라듯 우리들의 어린 생명들이 위대한 삶을 살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저작권자 ⓒ 더김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